지역소개

주변명소 : 삼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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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정번호 : 중요민속문화재 제104호
  • 지정년월일 : 1979년 12월 28일
  •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동4길 15
  • 시대 : 조선 영조 45년 (1769년)
  • 규모 : 6449㎡, 건물 7동(83평)

 

달성군 하빈면 묘리 묘골마을은 사육신의 한 사람인 충정공 박팽년(忠正公 朴彭年(1417~1456))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순천 박씨 집성촌이다. 삼가헌은 묘골마을과 낮은 산 하나를 경계로 하고 있는 파회마을에 자리 잡은 조선시대의 주택이다.

 

‘삼가헌’이라는 이름은 박팽년의 11대손인 성수(聖洙)가 1769년에 이곳에 초가를 짓고 자신의 호를 따서 ‘삼가헌’이라 한 것에서 유래한다. 그 뒤 그의 아들 광석(光錫)이 1783년에 이웃 묘골마을에서 이곳으로 분가하였고, 1826년에 초가를 헐고 안채와 사랑채를 지었다.

 

충정공 박팽년(忠正公 朴彭年)의 11대손인 가선대부이조참판 삼가헌 성수(嘉善大夫吏曹參判 三可軒 聖洙)가 영조(英祖) 45년(1769)에 건립하여 그의 호를 따라 삼가헌(三可軒)이라는 편액(篇額)을 걸고 이듬해 그 서편에 정각을 세우고 주변에 국화를 심고 연못에 연꽃을 심어 정자 이름을 하엽정(荷葉亭)이라 불렀다.

 

이 집이 ‘삼가헌’이라 불리게 된 이유는 사랑채에 걸려 있는 기문(記文)에 적혀 있다. 즉 ‘삼가(三可)‘란 중용(中庸) 9장에 나오는 선비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말하는데, ’천하와 국가를 다스릴 수 있고, 벼슬과 녹봉을 사양할 수 있고, 날카로운 칼날을 밟을 수 있다‘라는 뜻이다.

 

삼가헌은 전체적으로 조선 후기 영남 내륙 지방 양반가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주택이다. 넓은 대지에 안채와 사랑채,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별당채, 그 외 여러 부속채로 구성된 배치 형식은 사대부 가옥의 공간 구성과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이 건물의 배치는 대문을 들어서면 앞이 사랑채이고 이를 거쳐 안채에 출입할 수 있게 되어 있어 조선시대 관아(官衙) 양식과 비슷하며 사랑채는 ㅁ자형으로 이루고 있으나 두동으로 분리되어 있는 분산형이다.

 

정면 4칸, 측면 1칸의 일자형 평면으로 곳간 2칸, 대문간 1칸, 방 1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랑채는 ㄱ자형 평면으로 사랑 대청 4칸, 온돌방 2칸을 두었으며 온돌방 앞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사랑대청 안쪽으로는 1칸의 마루방이 있고 그 뒤로 1칸의 온돌방이 있다. 안채는 ㄷ자형으로 2칸의 부엌, 2칸의 안방과 반칸 폭으로 개방된 툇마루, 정면·측면 각 2칸의 건넌방, 2칸 방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와 안채사이 서쪽에는 장독대, 우물, 곳간채, 안변소가 자리 잡고 있다. 특징적인 것은 초가로 된 중문채이다.

 

사랑채에서 안채로 진입하는 통로로 180° 회전해야 진입이 가능하며 방아실 등과 같은 헛간채의 일부가 중문이다. 별당은 원래 서당으로 쓰던 4칸 5행의 ㅡ자집을 1874년 현재의 모양과 같이 개축했다. 여기에 ㄱ자로 돌출된 누마루를 부설하여 연당과 어우러진 운치있는 별당채가 완성되었다. 

 

 

출처 : 문화가 살아 숨쉬는 달성